왕십리에서 50년 넘게 노점을 해온 김종분 씨의 삶은 경이롭다. 여든셋의 나이에 이제 노점을 접어도 먹고살 만해졌지만, 김종분 씨는 그를 찾아오는 손님이 있어 일을 그만둘 수 없다. 그건 손님도 마찬가지다. 김종분 씨가 거기 있으니 찾아가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. 옹기종기 쪼그려 앉아 찐 옥수수와 구운 가래떡을 나눠 먹는 김종분 씨의 노점은 지상에서 가장 작고 소박한 낙원처럼 보인다.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서로를 보살피고, 먼저 간 딸이 꿈꾸던 세상을 상상하며 김종분 씨는 그 길 위를 평생 지키게 되었다. 한참 후에야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, 그는 고 김귀정 열사의 어머니다. 우리 사회의 그늘에 있는 작은 존재들에 눈 밝은 김진열 감독은 김귀정 열사 30주기 추모 다큐멘터리를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찍었다. 자주 가슴이 미어지지만 내내 따스한, 어느 경이로운 삶에 바쳐진 헌사.